책/사회과학

[책 리뷰]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 김은실 엮음 / 페미니즘이 불편한 이유, 불편해하지 않아도 될 이유

나탈리H 2020. 9. 22. 08:12

 

코로나 시대와 페미니즘,
이게 도대체 무슨 연관인가 싶을 수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제 별것에 다 갖다 붙인다며 찡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이야기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무조건 여성을 우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자'니까 좀 봐달라는 말이 아니다. 

'남자'니까 '여자'를 위해서 배려하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내가 공부한 페미니즘은 그렇다. 

하지만 요즘 페미니즘은 자칭
'래디컬 페미니즘'
(radical feminism, 급진적 여성주의)라고
부르며 모든 분야에서 남성중심주의를
배제하자는 주장을 펼치며 '그들만의 장'을
열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떨까 궁금했다. 

나는 대학원 졸업 논문에서
페미니스트 시인의 시적 변화를 다루었고,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의 사상과
방향의 변화를 공부해왔는데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페미니즘은 확장되어가고 '모두'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졸업 후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고,
딴에는 반가운 마음이 컸는데
사실 요즘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도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를 만큼 내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도 멈춘지 오래고,
페미니즘 현상을 다루는 도서도 읽은 지 오래지만
코로나를 핑계로 한 번 읽어보았다.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이 책은 크게 세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여성'에 대한 범주부터
페미니즘이 기획하는 코로나 이후 사회와
신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기획하려는
페미니즘 시각까지 연결된다. 

 


 

PART 1 누가 '여성'인가? 

 - 여성에 대한 질문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여성'에 대한 이해는
sex와 gender에서 시작한다.
소위 sex 는 생물학적인 요소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성별'이며,
gender는 사회, 문화, 역사적인 요소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야기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양성평등은
원래 'gender equality'다.
단순한 양성평등이 아니라 사회, 문화, 역사적인
요소에서 성별의 차이로 불평등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운동에서 비롯됐다. 

생물학적인 성을 가진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은 사화화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영향을 받아서
남성성, 또는 여성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18세기 초기 페미니스트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성도 여성처럼 교육을 받으면 여성화될 것'
이라고 말하며 일찍이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성구분을 지양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p.34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 자체도
지양해야할 일이라고 말한다.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라 규명하며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는 것은
모든 남성을 일반화시키는 논리 없는 말이고
바꿔 생각하면 범죄행위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남성이니까 그럴 수 있다', 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게 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공간 사수'를 강조하며 트렌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저지한 숙대 래디컬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518 망언과 세월호 유가족 폄훼 발언을 한 김순례 전 국회의원에게 동문으로서 면죄부를 주자고 주장한 바 있다. 그들은 여성의 정계 진출이 여전히 어려운데 좀 감싸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왜 여성에게만 유독 가혹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가부장제 관습을 후배 여성들이 따라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p. 53

 

 

 

'트렌스젠더는 버리고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는데,
페미니즘 물결 속에서 만들어진 단어가
'gender'이고, 페미니즘의 역사를 보더라도
누가 누군가를 안고 가는 문제가 아니라
'연대'하여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렇게 범위를 좁혀서...
고립된 위치에서의 고찰은 누굴 위한 걸까. 

 

 

 

 


 

PART 2 페미니즘이 기획하는 포스트 코로나 사회는? 

 - 코로나 19 현실에 관한 페미니스트의 질문 

 

 

휴교와 자가격리로 인한 여성의 가사와 돌봄 노동의 급증, 가정폭력의 증가, 보건사회 분야 노동자의 70퍼센트에 달하는 여성의 감염 위험 노출, 취약한 일자리에 집중된 저소득층 여성의 해고와 감제 휴직을 예로 들었다. 
...(중략)
한국 또한 '최악의 부담, 최악의 손해'라 할 정도로 여성의 상황이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3월 한 달 동안 주로 요양, 돌봄, 급식, 청소, 서비스 분야에 조사한는 40~60대 중년 여성의 해고가 50~60퍼센트 이상 급증했고, 11만 5,000여 명이 실직했다.

pp73-74 

 

고통받는 워킹맘? 

 

책에서 코로나19로 여성의 성 역할이 10년쯤
전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한다.
휴교령 때문에 학교 안 가는 자녀들 돌보랴
출근하랴, 돌봄과 살림을 안 할 수 없는데
여성들의 공동체 활동이나 모임이
정지를 요구받고 마을학교와 청소년 공간이
문을 닫고, 아동학대를 받는 아동들이
집에 갇히고...

이 파트는
내가 느끼기에 페미니스트로서의 질문보다는
전반적인 인권에 대한 질문이라 느꼈다.
돌봄이나 방문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노인이나
휴교 때문에 학교 안 가는 자녀를 돌보는
워킹맘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언니도 세 자녀를 가진 워킹맘이라
이번 일로 고생을 했지만 언니만 고생한 건
아니다. 아이들도 심심해서 고생했고
주말이면 집에서 가장 큰 팬에 아이들의 볶음밥을
일주일치 볶아서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어놓던
형부도 엄청 고생했다.

그러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래 집안일은
여성의 노동이라고 치부하는
(내 기준으로는 잘못된) 사상을 가진 남자를 만나
결혼했을 뿐이고, 코로나 덕분에 그런 사람임을
알게 된 것 아닌가.
굳이 코로나라서 여성이 더 고생한다기보다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확진자 

 

우리나라에서 난리가 났었던
'이태원 클럽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이야기로
동성애 혐오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
룸살롱과 클럽에서도 코로나가 퍼진 적이 있다.
그런데 이태원 클럽은 모두가 게이였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게이'들의 난교, 문란함이 이슈가
되면서 게이 혐오로 본질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룸살롱에 가서 코로나를 퍼뜨렸던
유부남의 경우에는 '유부남 혐오'로 이어졌어야
정상 아닌가. 그 시국에 모임을 열고 파티를 한
사람 자체가 문제인 것이지 그들이 동성애라서
문제가 됐던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어서 페미니스트의 그린 뉴딜까지 이야기하며
남녀노소를 비롯해서
공동체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수당을 제공하여 서로 위기가 닥쳤을 때 안부를
챙길 수 있도록 누구도 고립되지 않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코로나 19로 내가 가장 크게 느낀사실은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면
아무도 안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취약한 일자리, 저소득층이
굳이 여성뿐이겠는가.
일한 만큼 받는 일당을 받는 일용직의 경우에는
코로나도 무섭지만 오늘 당장
가족들을 굶길 거라는 생각이 더 두려울 수도
있다. 그들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고 거기서 코로나에 감염되기도 했다.
단지 모두가 함께 안전을 최상위의 기준으로 두고
뭉쳐도 버티기 힘든 이 시국에 남녀를 가르고,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나누는 행동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PART 3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을 넘어서

 -  코로나 19 이후 새로운 사회를 기획하는 시각에서 신자유주의 비판

 

 

아동 성착취물이 유통되고 강간 모의가 이루어진 소라넷 사이트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소라넷 운영자는 회원들에게 "21세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인들의 볼 권리와 알 권리를 막으려는 시대착오적인 일"이 일어난다며 쪽지를 보냈다. 지금 페미니스트들은 민주시민의 인간화가 '한국 여성'의 비인간화를 통해 달성된 역사를 질문하고 있다. 

p.132 

 

 

신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며
시장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과 재산권을 보호한다.
그러나 불법을 유통하면서 권리 운운하는 모습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이제 신자유주의도 한물 간 개념같다.
미국에서 공화당은 취약계층에게 주는
보조금 지급에 부정적이었으나
이번 코로나 사태로 달라진 스탠스를 취했고,
우리나라나 유럽 역시 일하지 않아도
(코로나 때문에 일할 수 없어도)
임금의 일부를 지불했다.
일하지 않았는데 왜 줘야 하나,
이것은 시장원칙에 위배되고 어찌 보면
신자유주의와는 맞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신자유주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을
이번 코로나 19로 인해 배웠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우리나라는 겉보기에는 평등한 길로 가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더 이상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페미니즘에 대해 다투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 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 이렇게 4가지를 일컫는
탈코르셋, 4비는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의 시작은
여성이 선택권을 가지기 위한 투쟁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처럼 무조건 결혼해서 출산을 해야 한다.
그게 여성의 책임이고 의무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아니라
원치 않으면 비혼주의, 딩크족으로 살아도
상관 없습니다. 주변에 비혼주의 남성도 있고 딩크족은
부부의 합의사항일 테니까요.
그러나 이런 극단주의가
페미니즘의 대중성에 영향을 미친다면 어떨까요.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스트로 규정되는 것에

두려움과 혐오를 가진 사람의 양가감정을 드러내는

대표적 문구가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고 (책 p161) 한다.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다만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아니고
여성공동체의 연대를 믿는 페미니스트입니다.
gender equality를 꿈꾸며,
여성을 살리기 위해 남성을 죽이는,
그들이 말하는 '여성'을 위해 트랜스젠더 같은
성 소수자를 버리고 가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며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다른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여자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남자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그 방면으로 소질이 없기 때문인 거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의식을 버리면 세상에 불편한게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여대생, 여의사, 여검사 등의 표현은
당시 주로 남성들이 가지던 직업이었기에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직을 가진다는 것이
생소해서 저렇게 불렀을 뿐이고
그저 옛 관습이 남겨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천천히 바꾸기 시작하면 됩니다.
간호사도 남자간호사라는 말은 종종 쓰지 않나요.
그 직업을 가진 특정 성별을 폄훼하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권리와 의무를 내팽개치지 않는 여성을 꿈꾸며,
억울한 사람 없이 공정한 페미니즘을 희망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알아가기에 괜찮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와 대단한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지만
이 시대의 페미니즘 양상에 대해
잘 적힌 책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