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회과학

[책 리뷰]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 작지만 완벽하고 가벼우면서 무거운 책

나탈리H 2020. 9. 24. 08:22

 

 

We should all be feminists.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난 소설가입니다. 

인종, 이민자, 여성에 대한 문제를 주제의식으로 삼은
소설로 각광을 받으며 영미문학을 이끌
차세대 작가로 부상했습니다. 

 

이 책의 원본이 된 TED강연은 오늘(2020년 9월 23일)
기준으로 627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비욘세의 노래 'flawless'에 피처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

스웨덴은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2학년에게 나눠주며

성평등 교육의 교재로 삼기까지 했을까요?

 


난 페미니즘엔 관심없는데?

내가 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분명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럼 아래의 표를 한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페미니스즘의 본질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페미니스트는 '양성 평등주의자'입니다. 

 

여자라서~ , 남자라서~

이렇게 성을 구분하여 역할을 정하고 사회문화적인 

편견과 관습을 정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1977년생입니다. 

그리고 여성에게 관대하지 않은
나이지리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녀가 9살이었던 초등학교 시절, 학기가 시작되자
담임 선생님은 학급 시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을 반장으로 임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장이 되고 싶었던 치마만다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반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반장은 남자아이여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선생님은 그 점을 사전에 밝히는 걸 잊었는데, 어차피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시험에서 이등을 한 아이는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러니 그 남자아이가 반장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pp.15-16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라고 여기게 됩니다. 


p.17




저번 포스팅에서 과거에는 대부분 남자만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로 진출해서 전문직을 가지다 보니 

여검사, 여의사 등의 성별이
직업 앞에 붙는 게 아닌가 싶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강하게 동의했습니다. 

계속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일 뿐인 거죠.

 

알쓸신잡 3에서 도시계획박사님으로 나오셨던 

'김진애'의원은 1953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으며, 알쓸신잡3에 출연했을 당시
80년대 서울대 공대에는 
여자화장실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었죠. 

 

지금도 공대에서 여성의 비율이 타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공대는 남자들만 다니는 게
'자연스러웠던' 현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분노하며 큰 목소리를 내면 

자칫 '화난 페미니스트'로 비칠 수 있는데요,

'화난 페미니스트'는
부정적인 함의가 많이 깔려있습니다. 

남자는 무조건 싫어하며, '여성적'인 것들을 배척하고, 

화장을 하거나 외모를 가꾸는 것도
'남성'을 위한 것이니 하면 안 되고 항상 여성이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등의 함의들을요. 

 

그래서 저자는 '행복한 페미니스트'가 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앞서 '페미니스트'는
양성 평등주의자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그림을 잘 그리던 남자애가 있었습니다. 

그림도 잘 그렸지만 공예에도 특출난 능력이 있어서

학급신문을 만들 때도 중심이 되었고 

각종 미술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조금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다른 남자애들은 그 친구를 무시했고,
자기들 틈에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 역시 운동보다는 앉아서 여자아이들과 만들기를 하는 걸 즐기기도 했지만요)

 

그리고 운동을 좋아하는 여자애도 있었습니다. 

달리기가 웬만한 남자애들보다 빨랐고, 

몸집도 컸고 식성도 좋았습니다.

남자아이들의 성장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중학생 때는 

남자애들보다 힘도 세고 어깨도 넓고
다리도 훨씬 근육질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놀면서도 항상 그 친구의

훌륭한 운동신경은 놀림거리였습니다. 

두꺼운 다리, 남자 같다는 식의 의미로 놀렸고

힘쓸 일이 일을 때면 '00이가 하면 된다'며 놀렸습니다. 

 


 

이렇게 저만해도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재능의 차이, 취향의 차이를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가 끝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아니었습니다. 

약 5년쯤 전에, 남자 조카가 5살쯤 되었을 때입니다. 

 

"이모 나는 분홍색이 좋은데요, 우리 반 남자애들은 다 파란색이나 녹색이 좋대요.

그래서 나도 파랑색이나 녹색이 좋다고 했어요" 

 

화가 났습니다.
고작 5살짜리가 좋아하는 색깔을 말하는데도
남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요. 

 

그리고 언니가 조카의 담임선생님과
상담하던 도중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우리 반에서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00이 뿐이에요~^^" 

 

물론 기분 나쁘게 말씀하신 상황은 전혀 아니었지만

'분홍색은 여성스럽다'는 인식은 누가 만든 걸까요.

 

왜 우리는 여자아이에게 분홍색 드레스를 선물하고 

남자아이에게는 하늘색 옷을 선물하는 걸까요. 

 



페미니즘은 '모두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p. 31

 

남자라서 데이트할 때 돈을 더 낼 필요도 없고

두려움과 나약함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별의 갈등이 심해지고
혐오가 심해지는 경우를 보면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갈등이 큰 것 같습니다. 

 


결혼 안 하고 싶다는 남자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이만하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고 살만하다.

근데 결혼하면 집 장만에 결혼자금에 

쪼들릴 텐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벌만큼 벌고 살만하니

나보다 나은 사람 만날 거 아니면 결혼 안 한다. 

 

그러면 남자들은 또 요즘 여자들은 양성평등을
그렇게 외치면서 결혼할 땐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요. 

 


 

뭐가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제 생각에는 문장에서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나보다 돈 많이 버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남자가 집을 해오면 좋겠어.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더 많이 내면 좋겠어

 

나보다 돈 많이 버는 여자를 만나고싶어

여자가 집을 해오면 좋겠어. 

데이트 비용은 여자가 더 많이 내면 좋겠어

 

 

요즘 이런 마인드 가지시는 분들 안 계시겠지만 

이 두 경우 모두 생각이 차이로 받아들여지고

성별의 차이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남성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들이 페미니즘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페미니즘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지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래전 그날(저자의 친구가 저자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던 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여성의 권리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도 지고 싶은 겁니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싶은겁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내한했을 당시 

한국사회에 유행하는
'탈코르셋'에 대해서 질문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자는 '선택권'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화장 안 한다고 립스틱 버릴 거면
자기에게 달라며 웃어넘기면서 말입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신경 쓴 머리에, 예쁜 메이크업을 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외모를 가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남성을 위해 메이크업을 했고 자기 관리를 했다. 

남들이 보는 눈 때문에 브라를 입었다.

 

남을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닌데
그렇게 살았다면 불행했겠습니다. 

그래서 메이크업안 하고 자기관리 안하고 

브라 안 입는 선택을 한 거라면 행복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강요하는 문화라면
그 또한 페미니즘에 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선택을 좁히는 방향입니다. 

여성을 억압했던 가부장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연애 안 하고, 결혼 안하고,

자녀를 안 가지고, 외모를 가꾸지 않고
그렇게 살고 싶다면 그렇게 살면 됩니다.

하지만 그게 전 세계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방향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한 입문 도서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를 욕해도 좋고
페미니즘을 반대해도 개인의 선택입니다.

다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해
보편적인 도서 한 권정도는 읽고 나서
비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