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리뷰] 82년생 김지영 / 피의자는 없는데 피해자는 있어보이는 영화.

나탈리H 2020. 10. 2. 09:00

2019년 作

감독 : 김도영

주연 : 정유미, 공유 

 

 

82년생 김지영

 

제목부터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가기 누르시면 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평이고 느낀 점입니다. 우선 저는 이영화를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와 연관 짓고 싶지 않습니다. 

 



간단한 비교로 우리가 '국제시장'영화를 보면서 황정민 배우가 그당시의 큰아들, 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짊어지고 동생들 공부시키고 시집보내려고 고생하며 살아온 모습을 보듯, 딸로, 엄마로 느낄 수도 있는 고통과 고생에 대해서만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한 여자의 인생에 저렇게까지 힘들 수 있냐는 혹평에도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저의 언니들이 82년생, 83년생이라서 평생을 옆에서 82년생 여자를 지켜본 결과 영화 속 주인공과는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모든 시대에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고,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제가 '82년생 김지영'에서 제일 불편한 사람을 고르라면 시어머니였던 것 같아요. (사실 그 분도 누군가의 친정엄마지만) 시어머니라서 불편한 게 아니라 요즘도 그러나 싶어서요.  예전에 그랬던 건 당시 사회적, 문화적 풍습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요즘도 며느리라서 시댁에 가서 앉아있지를 못하는 며느리는 우선 제 주변에는 없고 저희 언니들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면서 감동을 받고 공감하신 분들은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거나 산후우울증이라거나 경력의 단절에서 오는 좌절감을 느껴보셨을 수도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지영'의 엄마를 보며 마음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82년생 김지영

 

 

우리엄마는 정말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엄마랑 어딜 외출해도 할머니 식사 준비해놓고 나가고, 아니면 식사시간 전에 다녀오거나 그랬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시집살이로 엄마를 힘들게 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컸던 것 같아요. 당시에도 물론 회사를 다니는 어머니들도 계셨지만 엄마는 아니셨으니까요. 제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요샌 저 정도는 아니지 않나?' 했던 것 같아요.  정말 82년생으로 태어나 극중 '지영'같은 삶을 살아오신 분들의 인생을 제 기준으로 '판단'하는게 아니라 그저 영화를 본 소감입니다! 


카페에서 음료를 엎지른 지영을 보며 '맘충'을 들먹이는 사람들이나 '지영'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면서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쓰면서 저렇게 살고 싶다.' 고, 그것도 '지영'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말하는 건 그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 82년생 '김지영'들이 겪는 보편적 사회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맘충? 어디까지가 맘충인가? 

사실 '맘충'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쾌하기는 하지만 종종 마주치기는 합니다.  맘충은 무개념 엄마들을 혐오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아이를 핑계로 삼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식당에서 아이를 위한 식기가 있는 곳에서 아이 식기를 요구하는 건 맘충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를 핑계로 까다로운 서비스 요구한다면 맘충이라고 생각합니다.('아이'가 있으니 저 먼저 계산할게요, '아이'가 있으니 ~~ 좀 더 주세요' (메뉴를 따로 시키지도 않고 감자튀김 좀 더 주세요라던가, 탕수육 좀 더 주세요... 같은). 그리고 한 가지 더 꼽자면 식당에서 아기의자 썼으면 제자리에 갖다 놓지는 못하더라도 의자에 떨어진 밥풀 정도는 좀 치워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뭐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정당한 요구를 사유로 맘충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맘충보다는 무개념 엄마, 무개념 부모로 순화하면 어떨까요...)

 

 




아이가 생겨서 손해보는 느낌 ?

아이를 낳고 삶이 바뀌었다, 엄마가 됐기 때문에 내 삶이 이렇게 됐다는 생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누가 낳으라고 해서 낳은 것도 아니고(아무리 주변의 압박이 있었다고 한들) 다 큰 성인이 결정해서 아이를 낳았으면 아이를 낳고 나서 겪게 될 모든 문제들은 본인의 책임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내 아이를 탓하며 자기삶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린다면 아이에게도 미안해야합니다. 정말로 사회 때문에 힘든 것보다는 본인이 그 삶에 만족하지 못했기에 오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서 오는 고통스러움인가요? 남녀의 문제를 떠나 부모가 되면 아이가 없을 때와 똑같은 라이프스타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유모차가 있으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식당이어야 하고, 노키즈존이 아니어야 하고. 아이를 위한 놀이방이 준비돼있는 식당을 골라야 하고... 아이를 갖기 전에는 전혀 상관없던 것들이 중요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 아이가 생겨서 힘들어지는 게 아니라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조금씩 변하는 게 아닐까요? 손해 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아이로 얻는 기쁨이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고들 하니까요. 

 

 

 

82년생 김지영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하기는 하다

 

영화를 보면서 여자라서 승진하지 못하고 , 따로 나와서 회사를 자린 '지영'의 선배를 보며 그런점에서는 분명히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자가 출산, 육아 휴직을 쓰는 만큼 남자도 눈치 보지 말고 똑같이 쓸 수 있어야 합니다.(요즘 그렇게 많이 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여성이 많은 직군, 남성이 많은 직군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 교사이신 남성분은 아내분이 육아휴직을 썼고 이어서 본인이 육아휴직을 썼습니다. 하지만 제 남편 직장에서는 아무도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보건휴가도 간호사인 언니네는 당연히 챙겨서 쓴다고들 하는데(연차수당은 따로 받고), 제 주변에는 쓰는 분들을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제가 자세히 어떠어떠하게 되어야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아플 때 눈치보며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꼭 엄마여야하는 사회는 아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모성애와 부성애의 문제를 떠나서). 그리고 실효성있는 제도로 개선이 되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눈치보느라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보건휴가인데, 그 때문에 남성이 소외감을 느끼고 역차별이라고 생각해서 남녀평등의 걸림돌이 되는 제도라면 없애고 다시 시작하는게 낫지 않나요. 우리나라 여성들만 생리통에 시달리는건 아니지 않나 싶어서요.

 


제가 이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건 아닙니다. 

 

저는 보통 좋아하는 영화는 10번이고 20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변태적인 취미를 가졌는데, 이 영화는 딱 1번 봤어요. 그럼에도 리뷰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생각해서 남자들이 싫어하고, 여성들은 좋아한다는 편견을 없애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피의자는 없습니다. 그냥 '김지영'의 인생이 힘든 것 뿐입니다. 남편도 남편으로서 성실했고, 시어머니가 지영을 부려먹기만 하는 것 처럼 보이는건 지영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죄인도 아니고 왜 시키는대로 그렇게 하면서 스스로 병걸리는지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견디는 성격이 못되다 보니 전체적인 공감능력이 좀 떨어졌을수도 있어요.

 

저는 결혼했지만 아이는 없습니다. '나는 아이를 가져서도 다 잘해낼 수 있어요.' 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저는 없어요. 언니들을 지켜보며 느낀건 부모는 그냥 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선은 아이가 내 인생에 들어와서 행복하게 공존하려면 아이로 얻는 행복만큼 다른것에서 누리던 즐거움을 보낼 수도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저는 사실, 보는 내내 마음이 짠했던건 '지영의 엄마'였습니다.  결혼하면서, 아이를 가지면서 자신의 꿈을 자연스럽게 포기하며 살고, 그래서 딸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하던 엄마들의 모습이 보여서요. 그러니 꼭 '82년생 김지영'이라기 보다는 72년생, 62년생, 52년생 우리주변의 모든 김지영들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넓게 보면 모든 사회적인식과 고정관념 때문에 하고싶은대로 못살았던 모든이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