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리뷰] 히든피겨스(Hidden Figures) / '최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서

나탈리H 2020. 10. 9. 08:30

 

2017作

감독 : 데오도르 멜피

주연 : 타라지 P. 헨슨, 옥타비아 스펜서, 자넬 모네

 

 

나탈리로그

 

 

줄거리 

 

1960년대 머큐리 계획에 참여했던 세 흑인 여성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NASA에서 일하는 세 여성은 수학천재, 프로그래머, 엔지니어이며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회의에도 참여할 수 없고, 대학 교육을 받을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눅 들기보다는 강인하게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각자 분야에서의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은 수학천재이고 computer(계산원)이다. 사실 처음 컴퓨터는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이기 때문에 compute(계산하다)라는 단어에서 따온 말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우주 개발 경쟁을 할 때, 우주선의 속도, 낙하지점, 궤도 등 수시로 바뀌는 수치를 예상하고 계산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건물에는 유색인종(colored) 화장실이 없어서 800m나 떨어진 화장실을 가야 했다.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의에 참석할 수 없고, 백인 동료는 캐서린을 시기하며 중요한 수치가 적힌 자료는 지워버리고 건네주고, 공용 커피포트도 못쓰게 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모욕을 주고 괴롭힌다.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은 흑인이라서 NASA에서 '주임'이 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IBM이 나사에 들어온 것을 보고, 대부분 계산원으로 일하던 흑인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꼭 필요한 기계지만 아무도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IBM 7090과 포트란을 혼자 공부하고 알아낸다.  

메리 잭슨(자넬 모네)는 계산원으로 일하다가 머큐리호 엔지니어팀에 들어가게 된다. 엔지니어 육성 과정을 이수받던 그녀는 흑인이라서, 여성이라서 학위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결말과 실제인물

 

이 영화에 나오는 세 명의 여성들은 실제 인물 그 자체다.

 

 

히든피겨스 실제 인물 

출처 : astrobites.org/2020/04/27/hidden-figures/

 

캐서린 존슨은 탁월한 계산능력을 가졌지만 IBM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다급한 상황에서 능력을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훗날 아폴로 11호 발사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공을 세운다.

도로시 본은 IBM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고 계산원이 필요 없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을 뻔했던 자신과 같은 유색인종 여성 계산원 모두를 이끌게 된다. 나사 전산분야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매리 잭슨은 유색인종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위를 받지 못하자 법원에 소송을 걸었고 승소해서 결국 흑인 여성 최고로 NASA 엔지니어가 된다. 이후 나사에 여성 훈련 담당관이 된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속이 시원한 영화였다. 왜 자꾸 자리를 비우냐는 꾸중에 건물에 여자화장실이 없어서 자리를 비웠다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던 장면과 그 말을 들은 알 해리슨이(케빈 코스트너/ 극 중 캐서린의 상관) 화장실의 인종 표시를 두드려 깨버리던 장면은 최애 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속 시원하다. 모두가 머물러있기만 할 때 알 해리슨은 상당히 진보적인 모습으로 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So I have no choice but to be the first.

 

판사 앞에서 메리가 했던 말인데.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쏟아진다. 판사에게 역사에 남을 재판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할 때는 정말 짜릿했다.  사실 이 영화는 인종, 성 차별에 대한 메세지이도 하지만 '최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그게 늘 옳은 일은 아닐 수 있고, 우리는 익숙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끔 비효율적인 결정을 내릴 때도 있다. 영화에 나오는 세 주인공이 '최초'가 되기를 두려워했다면, 세 주인공의 남편, 친구, 동료들이 하나같이 반대만 했다면 어땠을까. 세 여성만큼이나 대단한 것은 세 여성을 아끼고 사랑하고 지지해줬던 남성들이기도 하다. 기득권층이라고도 할 수 있던 백인 남성들이(판사와 캐서린의 상관) 흑인 여성을 위한 결정을 했다는 점도 인상 깊었고 매리의 남편과 캐서린에게 반한 남성도 마찬가지였다. 

 

 

존 글렌과 캐서린존슨의 만남

 

컴퓨터는 못 믿겠다고 캐서린의 계산식이 맞으면(캐서린이 OK 하면) 비행을 시작하겠다던 존 글렌(비행사 역)도 캐서린의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직장을 잃었던 캐서린이 다시 나와서 한 번 더 능력을 인정받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회를 보고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발 빠르게 대처하는 도로시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관리인이 되고 싶었던 도로시가 컴퓨터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어버린 흑인 여성들에게 IBM을 다루는 법에 대해 가르쳐서 그 무리를 이끌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도로시 본


'히든 피겨스' 제목의 의미

 

따뜻한 감동도 있고, 의미도 있고 참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히든 피겨스'는 ('Hidden Figures') 'Figure'이라는 단어는 '수치'라는 의미도 있고 '인물'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보통 '숨겨진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 가지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흑인 여성 계산원들이 수도 없이 계산했을 '우리가 모르는 수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캐서린이 보고서에 자기 이름을 넣자 동료가 '계산원은 보고서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지워버리는데요, 이런 식으로 역사적으로 지워진 '인물들의 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

 

살다 보면 종종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죠. 불편한 게 많은 사람들. 조금이라도 부당한 건 못 참고 목소리를 높여서 옆사람까지 좌불안석으로 만드는 사람들. 저도 그런 사람들이 참 불편하기도 하고 가끔은 저도 그런 사람일 때가 있는데요. 어쩌면 영화에서 세 여인 모두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응원해주고 독려해주지는 못할 망정, '쟤는 맨날 저러더라, 저렇게 까다롭게 굴더라' 하면서 핀잔 주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살면 우리는 항상 고인물에서 썩어만 갈 테니까요.